'플랜, 사운드 작업 1' 에서 밝힌 음향 생태학적 설계의 의도를 '해체'라는 주제와의 연관성 속에서 사운드 작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본 프로젝트에서의 사운드 설치는 3가지로 구성되고, 이를 각각 sound A, sound B, sound C로 명명한다. sound A와 sound B는 각각 금속과 목재로 만들어진 구조물에 음향 오디오 프로세서를 결합한 자체 제작 스피커를, sound C는 일반 상업용 스피커를 사용한다.
=> 모든 사운드는 정지된 모습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변형이 가능한 상태가 되기 위해 real-time 오디오프로세싱 알고리듬 안에서 구동되어진다. 각 사운드의 프로세싱은 사운드의 구성 요소들을 파라미터화 시키게 되는데, 염기서열 발생에 관한 generative 알고리듬의 결과물에 따라 실시간으로 통제되는 구조를 이루게 된다. (참고 : https://bellefaust.tistory.com/28). 이것은 청자의 청각적 기호를 충족시키 위한 목적이 아닌, 자생적으로 발생되는 생태 환경적 요소에 의해 사운드의 파라미터가 통제되는 것으로서 음향 생태학적 구조 안에서 사운드가 활용되어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본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음향 생태학적 구조와 의의는 '플랜, 사운드 작업 1'에서 참고할 수 있다. (참고 : https://bellefaust.tistory.com/59)
1. '정상 상태' 설정
: 본 프로젝트에서 정하고 있는 사운드의 '정상 상태'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들려지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은 무지와 이기로 대표되는 초고밀도의 결집 상태를 해체하기 위한 초기 단계 설정이고, 오디오프로세싱에 의한 변형을 가하기 이전 상태, 즉 사운드 소재가 가진 원래의 소리 그대로를 '정상 상태'로 정한다. 그리고 '정상 상태'를 위해 선택된 사운드 재료들은 실시간으로 오디오프로세싱을 통한 '해체' 과정 속에 놓이게 된다.
선택 되어진 사운드 소재는 강대국 사이에서의 패권 쟁탈전으로 얼룩진 국제 정세의 현 주소를 비판하기 위한 은유가 된다. 이에, 미국-러시아의 군사 안보 대립 상황을 대표하는 소재를 선택하여 sound A, B, C를 디자인 한다. Sound A는 스피치나 음성을 소재로 하는데 두 강대국 지도자(바이든, 푸틴)의 국정 연설을 소재로, sound B는 음악의 화성적 구조와 질서를 비판하는 것으로서 두 강대국의 애국가를 소재로, sound C는 음향 생태학적 측면의 keynote sound / sound signal 범주를 넘나드는 음향체(참고 : https://bellefaust.tistory.com/58)로서 무기가 다루어지는 소리와 공연 장소 외부의 실시간 소리 풍경을 소재로 선택한다.
2. 사운드 재료, 의의
a. sound A (대의를 위한 국정 연설)
: 지구 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가장 차별되는 것으로서 인간 고유의 문화라고 한다면 글과 말로 대표되는 언어가 될 것이다. 다른 종들에게서도 그들만의 언어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구강 구조의 유연성으로 발화되고 문자로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인간 언어 고유의 특징은 다른 생명체들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언어 역사를 만들어 왔다. 모든 지구 상의 종들 중에서 사유 전달의 측면을 가장 디테일하게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인간의 언어일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본 프로젝트는 이러한 포장적 측면에 가려진 언어의 군중 결집이 낳은 파괴적 측면을 조명하고 비판한다.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는 지도자의 연설이 군중 결집의 시초가 되곤 하였다. 이것이 살인, 전쟁이나 침략으로 치달았던 역사를 우리는 기억한다. 제 2차 세계 대전의 전범 히틀러의 연설이 대표적인 경우였고, 폭력에 의한 혁명을 이끌었던 레닌의 선동 연설이 또한 그러하였다. 이것은 지난 세기의 일이지만, 21세기 지금은 어떠한가. 정치 이념의 양극화가 누그러진 현 시점에서도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은 강대국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한 영토, 군사적 팽창, 동맹 확장을 위한 외교 팽창을 벌인다. 이것은 패권 쟁탈전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한 노력이며, 그들이 수호하는 정치 이념과 철학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포장되어 기표만 남은 언어 수단으로 전락되었고, 군사적 충돌을 예고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비추어 지기도 한다.
인류의 문화 유산은 언어에 의해 매번 새롭게 포장되고 있다. 21세기에서 벌어지는 강대국 지도자들의 국정 연설이라는 언어 발화에서 대의적 포장이라는 이중성을 흔히 엿볼 수 있고, 순수성을 박탈당한 채 포장된 이념을 거리낌 없이 남발하는 집단 권력 유지의 현 주소가 그대로 묻어있음을 발견한다. 러시아의 지도자 푸틴은 삼권 분립을 무시한 권위적 통치체제를 유지하면서, 10년이 넘도록 독재적으로 러시아 국정을 이끌고 있으며 최근에는 크림 반도 무단 합병, 우크라이나 침공을 자행하였다. 미국의 지도자 바이든은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세계에 호소하지만 오일 달러 패권 유지,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으로 주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평등한 경제적 이득을 선점하고 있으며, 너무나 자주 발화되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인류가 공유해야 할 가치인지 자국의 초월적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가치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것은 스스로가 내세우는 지도적 이념이 가진 순수성을 포장한 권위주의이자 팽창주의이다. 그들의 연설 속 언어는 이러한 포장적 이중성을 보여주는 음성이 된다.
본 프로젝트는 언어가 가진 포장적 이중성을 드러내고자, sound A의 소재로서 군사 패권 강국 지도자들의 '대의를 위한 국정 연설 음성'을 선택하였다.
b. sound B (애국가)
: 음악 화성은 일종의 질서이다. 음악이라는 무형 가치는 음표의 조합 혹은 배열이라는 질서를 통해 듣는 이에게 다양한 감정 상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여 왔다. 청각적 자극을 통한 이러한 신비로운 역할은 음악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 인류 사회는 음악을 통해 결집의 목적을 달성하는 사회 문화 역시 만들어 왔다. 수 백명의 파업 노동자들 거리 행렬에 뒤따르는 소위 운동권 음악이라든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의 배경을 장악하는 애국가라든지, 군대에서 전투력 증진의 일환으로 외우다시피 하는 소위 (대한민국의)10대 군가라든지 하는 경우들은 음악이 가진 또 다른 결집적 기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개인 차원이 아닌 집단 공동체적 이념을 공유하고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역할을 음악에 부여하고 있는데, 본 프로젝트에서는 '질서 확립'이라는 측면의 이면을 조명하여 음악의 화성을 다른 측면으로 바라 보고자 한다.
음악에서의 화성 진행과 구조는 특정 감정이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각각의 음표들이 미세한 균형을 이루도록 '치밀하고 과도한 계산'을 허용한다. 가장 널리 사랑받는 음악의 질서는 수 많은 청자들을 결집시키도록 만들지만,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각각의 음표들이 가진 가능성들은 재단되고 다듬어지게 된다. 본인은 음표들의 재단된 상태를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억압된 상태에 비유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sound A의 국정 연설이 가진 이중성은 sound B가 가질 수 있는 이중성과 그 맥락이 공유된다.
흔히 어떤 문화에서든지 애국가를 가장 자주 듣는 경우는 전사자들을 애도할 때나 금메달을 목에 걸었을 때일 것이다. 진심으로 충성심을 바쳐 어떠한 성과를 내었을 때 자주 듣는 음악이 과연 그 나라 사람들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기 위한 음악인지 의심해 본다면, 가장 많이 사랑 받아 온 대중 가요나 오랜 전통 음악을 해당 국가의 애국가로 정한 경우는 찾아 보기 드물다는 점이 그렇고, 위의 두 경우 처럼 대의를 위한 자기 희생을 애도하는 데 항상 사용되는 음악이 애국가라는 것은, 아무래도 애국가라는 것의 위치가 어디까지나 인위적이고 계산적일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국가가 사회적으로 가진 이념적 정체성이 그 음악에 묻어나야 할 것이고, 신생독립국가에겐 고무적인 의미가 담기고, 단일 민족적 가치를 내세우는 국가에서는 민족의 염원이 담길 수 밖에 없는 집단적 상징성이 표출되어야 하는 점은 어디까지나 애국가가 가진 고유의 특징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공동체적 결집을 가장 우선적 목적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애국가의 이런 기능은 우리 모두의 일상 생활에서 중요한 감성을 전달한다는 측면을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단 결집이라는 측면이 가질 수 있는 파괴성을 연계하여 생각한다면, 현재 인류 사회의 패권 경쟁을 생각해 보았을 때, 국가 사회적 정체성 포장을 우선시 할 수 밖에 없는 애국가의 이면은 집단 구성원 개개인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보다는 해당 집단의 지도적 이념이 유지되기 위한 영역 수호의 수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그 안에서 보여지는 '치밀하게 과도한 계산'에 의한 화성의 구조는 애국가를 겉으로는 청각적으로 고무적인 아름다운 질서이자, 안으로는 지도적 이념을 건축하기 위한 기능적 도구가 되도록 만든다.
본 프로젝트에서는 음악이 가진 화성적 질서에 숨겨진 이중성을 조명하고자, sound B의 소재로서 군사 패권국들의 '애국가'를 선택하였다.
c. sound C (무기 다루는 소리, 음향 생태학적 접근)
: 위의 두 사운드 소재와는 그 특성이 조금 다르다. Sound A와 B가 청각적 도형(foreground sound)이라면 sound C는 청각적 배경(background sound)가 된다. Sound C의 사운드 재료는 전장에서 '무기 다루는 소리'를 취하는데, 포장적 이중성 측면을 비판받는 sound A와 B가 현 인류 사회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에 대한 가상적 예측을 소리 풍경(soundscape)으로 나타내기 위해 선택되었다. 다시 말해, 음향 생태학적인 소리 범주 안에서, sound C는 실시간 수음되는 전시 현장의 외부 소리와 서로 중첩을 이루는 다층적 관계를 만들고, keynote sound(기조음)로서의 역할과 sound signal(신호음)로서의 역할을 보여주게 된다.
그 두 가지는 머레이 쉐퍼(R. M. Schafer, 1933-2021)가 창안한 범주로서 음향 생태학적 측면을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범주를 가리키는데, 기조음은 임의의 어느 지역에서 흔히 들려오는 배경이 되는 사운드를 가리키고, 신호음은 기조음과 대비되는 사운드로서 음향적 경고와 같이 의식적으로 인식되는 청각적 도형을 가리킨다. (참고 : https://bellefaust.tistory.com/58). 이 두 가지는 상황에 따라 서로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청각적 도형(신호음)이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청각적 배경(기조음)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Sound C에서 설계 되어지는 전시 장소 외부의 소리 풍경과 무기 다루는 소리는 신호음에서 기조음으로 범주가 이동되는 과정 속에서 다층적 레이어를 이루는 사운드로 프로세싱되며, 이는 '플랜, 사운드 작업 1'에서 제시하였던 음향 생태학적 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의도를 담는다. (참고 : https://bellefaust.tistory.com/59). 즉, 고정되지 않은 음향 생태학적 요소를 담기 위한 작업과 동시에, 21세기 패권 국가들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음향체가 현재 우리 일상에 바로 스며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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