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소리 풍경 연구자 토리고에 게이코는 그의 저서 '소리의 재발견(2014)'에서 서양 현대 음악의 흐름 속 음악 소재 변천 과정을 청자와 연주자 사이에 존재하는 무형의 벽이 어떻게 허물어져 가게 되었는지를 통해 보여주었다(참고 : https://bellefaust.tistory.com/56). 음향의 구심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고대 로마 그리스 문명에서 부터 시작되었던 원형 극장은 중세 시대를 거쳐 과학 혁명 시대에 이르러 더욱 견고하고 효과적인 건축 기술에 힘입어 콘서트 홀이라는 공간으로 한층 발전된 모습의 바운더리를 인류 문명에 심어 놓게 되었다. 이로써 오감의 몰입은 더욱 가중화 되고 감상의 밀도는 더욱 짙어지게 되는 효과를 낳았지만, 콘서트 홀이라는 바운더리가 스스로 외부 세계와 단절 혹은 이분법적 경계를 만들어 놓게 되는 역사를 낳았으며, 이것은 지금도 인류의 음악이라는 문화를 거의 규정짓고 있다 싶을 정도로 굳건한 지위를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1900년대를 전후하여 탄생하기 시작한 현대 미학의 다양한 시도 속에서 음악이라는 분야가 겪어 온 과정은 당시 사회와 문화를 규정짓고 있었던 정치 사회적 이념의 전복과 쟁탈 혹은 투쟁 만큼 모험적인 양상이었음을 밝히고 싶다. 당시 현대 음악의 여러 선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소리를 듣는 자와 창조해 내는 자 사이의 관계에 대하여 이전과는 다른 생각을 펼치기 시작했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발명된 새로운 도구와 교통 수단들에서 발생되는 넓은 스펙트럼의 소음을 음악의 새로운 소재로 확인하려 했던 루이기 루솔로(Luigi Russolo, 1885~1947), 일상 속에서의 물리적 진동처럼 '거기'에 항상 위치해 있고 자생하는 존재로 음악을 바라보았던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 가공되지 않은 외부 소리의 소재가 가진 숨겨진 미학적 가능성을 실험하고 구체음악(musique concrete)을 창시한 피에르 쉐퍼(Pierre Schaeffer, 1910~1995), 후대 전자 음악의 선구자적 기틀을 확립한 슈톡하우젠(Karl Heinz Stockhausen, 1928~2007), 청자와 연주자 사이의 벽을 한 순간에 백지 상태로 만들어 놓은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1912~1992), 사운드스케이프의 개념을 확립하여 음향 생태학과의 다학제적 접근 속에서 콘서트 홀 외부의 음향 세계가 가진 미학을 음악적 사상으로 발전시킨 머레이 쉐퍼(R. M. Schafer, 1933~2021) 등은 기존의 관습이 가지고 있었던 경계의 벽을 허물고 음악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와 실천을 보여주었던 현대 음악의 선구자이자 사상가들이었다.
본 프로젝트의 사운드 작업은 위의 20세기 현대 음악의 발자취에서 그 음악적 유산을 이어가려는 시도 위에서 확인되는데, 사운드 소재가 가지고 있는 음향학적 해체와 재결합이 미시 생태 공간의 구성원 -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통제되고자 하는 것에는 생태학적 연결 고리, 특히 머레이 쉐퍼의 음악적 사상 - 사운드스케이프에서 발견되는 음향생태학적 요소들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무엇이 다른 무엇 때문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은 생태학적 환경에서 기본적으로 발견되는 것이고, 이러한 관계의 다양한 경우들이 모였을 때, 해당 환경은 '변화'라는 속성을 보여주게 된다. 본 프로젝트의 사운드 작업은 최근 인류 생활 환경을 전세계적 규모로 변화시킨 COVID19 팬데믹을 하나의 거대한 생태학적 사건으로 가정하면서 출발하는데, 이것이 가진 인류 사회학적 메세지 - 팬데믹이라는 사건의 원인은 무엇이었으며 인류의 생활 관습이 현재 어떠한 생태 환경을 낳았는지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생태학적 관계를 사운드 개체와 미시 생태 구성원(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활동 양상 속에서 바라보고 그러한 측면에서 데이터를 활용한 사운드 구조의 유연성(data-driven)을 설계함으로써 생태학적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태학적 연결 고리는 발생적 알고리듬의 출력 데이터를 재해석함으로써(참고 : 추후 게재) 만들어 지는데, 이는 위에서 밝힌 '콘서트 홀'이라는 바운더리의 한계점 - 청자를 위해 존재하는 음악이 아닌 generative 알고리듬 결과물에 의해 '콘서트 홀' 외부 세계로 부터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여 주고, 사운드가 변이되는 과정은 우리가 환경을 관찰했을 때 처럼 듣는 이의 청각적 미학이 아닌 자생적으로 발생되고 변화되는 독자성을 기준에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일반적으로 사운드 발생은 매 순간 일어나는 '운동'의 양상 중 하나임을 본다면, 본 프로젝트의 사운드 발생 구조는 미시 생태 환경의 구성원이 지닌 진화적 양상(여기서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염기서열 자료가 된다.)을 생태학적 요소로 도입하는 것으로써 사운드스케이프의 음향생태학적 연관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듣는 이의 청각적 관습과 미학을 기준으로 하는 콘서트 홀이 가진 바운더리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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