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를 뜻하는 단어 '사운드(sound)'와 풍경 또는 경관을 뜻하는 접미어 '스케이프(scape)'가 결합한 말로 우리 말로 번역하면 '소리 풍경'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현대 음악의 줄기 속에서 이러한 단어가 등장하게 된 것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 캐나다의 현대 음악/작곡가 R. M. Schafer(1933~2021)의 지대한 노력과 공헌에 의해서 였는데, 그는 기존의 음악에 대한 전통적 관습과 관념을 지적하고 현대 사회가 가진 소음이라는 문제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과 소리를 생태학이라는 학문과의 연계 속에서 파악하고 음악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던져 주었던 인물이었다. 일본의 어느 학자 토리고에 게이코는 그의 음악적 견해를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데, R. M. Schafer는 서양 음악의 근대주의가 낳은 제국주의적 시각의 폭거에 소외된 환경의 소리를 철학, 역사, 문화, 정치적 실천으로 회복해야 함을 다양한 음악 작품으로 공개하여 왔으며, 이를 위한 다학제적인 연구와 문화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실천해 왔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WSP(world soundscape project)를 이끌었고, 저서 [The Tuning of the World](1977)을 통해 soundscape를 정의하고 깊이 있는 통찰력을 이끌어 내었으며, 전자 음악, 미디어 믹스, 공간 음악, 도형 악보, 불확정성의 철학 등을 폭넓게 수렴하여 자신의 음악 사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 1939년 곤다 게이이치 박사는 당시 도쿄 풍경 협회에서 발행한 <풍경>이라는 잡지에 어느 글에서 다음의 내용을 적었다.
" 풍경은 보는 것만이 아니고 들어야 할 때도 있다. 듣는 풍경은 보는 풍경에 무형의 분위기를 부여한다. 구니키다 돗포는 가을이 되면 숲에서 나는 소리, 겨울이 되면 숲의 아득히 먼 곳에서 울리는 소리로 부터 무사시노의 마음이라고 할 만한 분위기를 이해했다. 이 경우 듣는 것이 오히려 보는 것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경우는 자주 일어난다. "
.. 1939년 같은 해에, 가와무라 다미지는 '풍경의 향기와 소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한탄한다.
"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은 코와 귀를 좀 더 유용하게 함께 써서 풍경의 향기와 소리, 색과 형태를 서로 잘 융화해서 즐겨야 하지 않는가.. 대체로 문화 수준이 진전함에 따라 시각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 보통인데, 음악이나 향료로 즐기는 경우와 달리 자연의 소리나 향기에는 점차 부주의해 지는 경향이 있다. 단시간에 가능한 한 널리 다니며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의 경우 움직이는 것은 눈 뿐이다.. "
.. 1982년 도쿄 대학 교수 나카무라 요시오는 자신의 저서 <풍경학 입문>(1982)에서 환경과의 소통 부재에 대해 지적하였다.
" 거기에는 근처에 있는 강은 더렵게 놓아두면서 미술관 문 앞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된다는 식의 경우가 있다. 즉 미적 생활을 미술관으로 격리하는 경향과 일상 생활 공간에 대한 무관심이 겉과 속을 이루고 있다. 문화를 장소에서 따로 떨어뜨려 비일상화하는 근대주의의 일반적 체질은 서양 사상을 그 역사와 풍토의 모태로부터 격리해서 기성품으로 자국에 들여오는 과정에서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입 사상에 계속해서 쫓기던 지적 다망함이 생활공간과 풍토에 주입된 사상성을 바라보는 시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
서양 현대 음악 흐름 - 소재의 발견
소리에 대한 소재는 점차 확대 되어 기존 서양 음악의 틀을 허물게 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가 지나서 였다. 다음은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환경음을 비악음으로 규정하고 작품에 사용되는 악음과의 구분을 바라보는 측면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 서양의 음악에서는 소리의 소재를 이른바 악음만으로 규정하여 왔다. 악음 이외에 주변 환경에 존재하는 여러 소리들(환경음)은 비악음으로 간주함으로써 둘을 엄격히 구별했다. 위의 그림 처럼 20세기 들어서 '음악의 음(악음)'과 '일상의 환경음(비악음)' 사이의 두꺼운 벽은 허물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제1차 세계대전 전날 밤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미래파 작곡가 Luigi Russolo(1885~1947)는 제철소, 지하철 소음, 비행기 소리 등 도시를 채색하기 시작한 당시의 여러 소음을 음악 예술에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며, 인토나루모리(intonarumori)라는 이름의 소음 기계를 제작해 작곡과 연주 활동을 했다. 그는 'Art of Noise'를 발표하면서 '소음 음악' 사상을 실천하고 있었고, 음악 작품의 소재인 소리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남기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제 2차 세계대전이 지나고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음향 엔지니어였던 Pierre Shcaeffer(1910~1995)에 의해 또 다른 전기를 맞게 되었는데, 외부의 여러 가지 소리를 녹음한 후 이를 편집하거나 가공하여 작품을 만들어 내는 과정 속에서 '구체 음악'(musique concrete)의 개념을 창출하였으며, 이 무렵 악음과 소음의 구별은 이미 무의미한 것이 되고 있었다. 한편, 그 보다 더 앞서서 프랑스의 작곡가 Erik Satie(1866~1925)는 '가구 음악'이라는 개념 아래에 비일상적 공간인 콘서트 홀에 틀어박힌 음악을 일상 공간 속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음악을 가리켜 '이는 어떤 진동을 가리킬 뿐 다른 목적은 없다. 실내에서 빛이나 열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의도가 음악의 악음과 일상의 환경음이 함께 들리는 것이었다면, 이것을 더욱 확실하게 밀고 나간 사람은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John Milton Cage Jr., 1912~1992)였다. 그의 유명한 작품 [4분 33초]는 피아니스트가 무대에 등장하여 4분 33초 동안 아무 것도 연주하지 않는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청중이 듣는 것은 콘서트 홀 내부의 웅성거림과 바깥에서 들려오는 환경음 뿐이다. 이를 통해 그는 음악의 구조를 소위 백지 상태에서 바라보게 하고, 서양 근대 음악의 본질과 이를 떠받치는 제도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이러한 현대 음악사의 흐름 속에서 R. M. Schafer(이하 쉐이퍼)는 '소리 풍경(soundscape)' 이라는 개념을 확립하여 소리 소재의 점진적 확대를 필연적 귀결로 바라보면서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한다.
음악의 소재를 악음에서 모든 소리로 확대하는 것은 음악 자체를 예술의 틀에서 일상 생활의 환경으로 넓혀 감을 뜻한다. 존 케이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음악을 작곡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음악 활동은 삶에 대한 긍정이다. 이는 혼돈에서 질서를 끌어낸다던지, 창조 속에서 더 나은 기법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자체를 깨우려는 시도이다."
# 발췌, 참고 문헌 : [소리의 재발견 - 소리 풍경의 사상과 실천], 토리고에 게이코, 한명호 역, 그물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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