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ID-19 팬데믹이 우리의 일상에 남겨준 메세지 중 하나를 꼽으라면, 생태 불균형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한다.
# 종간 전파, spill-over
인류의 역사 속에서 광범위한 전파력과 병독성으로 무장한 미세 병원체들이 남긴 치명적인 순간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중세 시대 흑사병을 일으킨 페스트 균, 20세기 초에 발발한 스페인 독감의 인플루엔자, 에볼라 바이러스, 최근의 사스와 메르스에 이르기 까지 인수공통감염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병원체들의 위력은 인류가 쌓아올린 사회 전반의 이모저모를 무력화 시키기에 충분하였다. COVID-19 팬데믹을 몰고왔던 SARS-CoV-2 바이러스 역시 인수공통감염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다행히 역대 어느 병원체 보다 그 병독성은 약한 편에 속하지만, 이미 전세계가 일일 생활권에 들어설 만큼 이동성을 극적으로 발전시킨 호모 사피엔스, 즉 현생 인류에게 그 약한 병독성의 바이러스는 약간의 변이만으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전파력을 장착하게 되어 전세계적 차원에서 인류의 모든 생활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였었다.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원생동물 등의 병원체로 분류되는 이들은 각자에 맞는 숙주 환경에 오랜 시간 동안 적응 진화를 거쳐왔기에, 새로운 숙주로 넘어가는 일이 흔하지 않다. 그래서 병원체의 병독성이 낮아지고 숙주의 면역 내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묘한 균형 상태가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져 왔고, 이를 공동 진화라고 우리는 부른다. 하지만, 어떤 우연한 기회에 혹은 불가피한 환경 변화로 어쩔 수 없이 병원체가 새로운 종으로의 숙주 환경을 맞딱뜨려야 할 경우도 생기는데, 이를 종간 이동 혹은 종간 전파, spill-over라고 부른다. 그리고 인류 전염병의 역사에서 화려한 페이지를 장식했었던 병원체들은 동물과 인간을 동시에 감염시키는 인수공통감염 병원체로 기록되어 왔다.
# 전염병의 역사, 전쟁의 역사
인간 사회의 다양한 발전 이면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이 너무도 많을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자연 생태 환경 불균형을 인류가 만들어 내고 있다는 지적은 인수공통감염이라는 현상과 충분한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호모 사피엔스의 위대한 발자취로 기록되는 농업 혁명. 이로써 인간은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고, 야생 동식물을 작물화, 가축화 하게 되었으며, 식량 생산의 획기적 발전과 인구 증가를 경험한 우리의 조상들은 문명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 고대 문명은 사회를 조직화하고 계급을 만들어 내었으며, 인류를 더욱 강한 존재로 지구 상에 군림하게 만들었다.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 혹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어구로 우리 스스로를 미화시키기 시작하였던 발단이 농업 혁명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병원체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승전의 기회를 잡은 역사의 페이지가 되기도 한다. 인구 밀도의 증가와 사육의 필요성으로 인한 동물과의 접촉은 곧 병원체의 활발한 교환을 발생시켰고, 인류가 땅을 개간하고 수로를 확장함에 따라서 스스로의 생태 지역을 빼앗긴 여타 동식물들은 오랜 시간 동안 내재해 왔었던 기생체(바이러스, 세균 등)에게 돌연변이의 기회를 주게 되었고, 인간이 길들이고 있었던 가축과 작물들로 부터 공기나 물, 배설물 접촉 등을 통해 병원체들은 인간이라는 새로운 숙주 환경에 적응 진화를 해야 했던, 확장 가능성이 열렸던 역사의 발단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간헐열이라는 형태로 소에게서 옲는 브루셀라(Brucellosis), 치명적인 수면병을 일으키는 트리파노소마 원충(Tripanosoma brucei) 등은 오래 전 부터 등장했었고, 천연두, 홍역, 볼거리 등이 이러한 관계 속에서 인간이 얻어 낸 질병의 역사였다.
질병의 역사, 병원체의 역사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정복, 패권이라는 단어 이면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 사회의 정복과 패권 다툼은 언제나 화려한 승리의 역사로 기억되고 기록되어 왔다.
그리스-로마 문명으로 대표되는 고대 국가의 황금 유산들 이면에는 어떠한 이면의 역사가 있었을까.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465~400 B.C)에 의해 기술된 아테네 역병은 스파르타와 아테네 사이에 일어났던 패권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그 서막을 연다. 아테네가 군사적으로 패배한 전쟁의 역사이지만, 이 와중에 인구의 절반 이상이 소멸로 내몰렸던 원인은 지금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아테네 역병'이라고 불리우는 전염병이었다. 전쟁은 항상 밀집된 공간을 요구하기 마련이고, 야생 지대를 전장의 무자비함과 살육으로 덮어야 하는 일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피레우스 항구를 통해 퍼져 나갔던 이름 모를 병원체는 아테네의 모든 지역에 전파되었고, 위생과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도시 국가 아테네는 사회, 정치 체제의 모든 붕괴를 경험하여야 했으며, 결국엔 스파르타에게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또한, Pax Romana의 마지막 지위를 이끌었던 안토니우스 황제(121~180) 재위 시절은 주변 국가를 속국으로 만들고 식민지화 하여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던 로마의 최대 황금기이기도 하다. 로마 제국 전체 인구 수가 7천 5백만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영양 결핍과 하층민들의 경제적 붕괴와 수탈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가고 있었고 거대한 영토와 고도로 발전된 도시 문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전쟁으로 이민족들을 받아들이고 속국으로 만들어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던 시기였기도 했다. 마지막 제국의 위기는 동쪽에서 찾아왔는데, 당시 파르티야(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복귀하던 군사들과 함께 유입된 병원체들은 165년 발병한 이래, 1년도 지나지 않아 수 백만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들었고, 황제의 목숨까지 앗아가게 되었다. 이것은 안토니우스 역병이라는 이름으로 역사 속에 남게 되었다.
흑사병, 유라시아를 지배하던 몽골 제국 말기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병인데, 유럽을 초토화 시키는 와중에도, 중앙아시아를 건너 몽골 제국의 지배를 받던 중국에서도 이미 이 시기에 전체 인구의 30%를 내놓아야 했으며,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전체를 덮어버릴 정도로 인류 역사 상 가장 강력했던 팬데믹의 역사를 만들어 내었다. 흑사병의 발원 역시 분명하지 않으나, 당시 해상 무역으로 부를 거머쥐고 있었던 이탈리아 상인들의 거점 요새였던 카파라는 곳에서 벌어졌던 몽골 군대와의 전쟁을 그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야생의 들쥐로 부터 옮기는 페스트 균은 당시 중앙아시아에 널리 퍼져있었지만, 이 페스트 균은 군사적 충돌이라는 밀집 상황에서 급속히 전파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였을 것이며, 본국으로 귀환하던 제노바 상인들은 시칠리아의 메시나 항구를 유럽 흑사병의 발원지로 만들어 버리게 된 것이다. 이 역시 전쟁과 당시 지중해 무역 패권 다툼 그리고 우위 선점이라는 물리적 충돌이 병원체에게 새로운 숙주 환경을 제공해 준 셈이었다.
천연두의 역사는 유럽의 식민 제국주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중세 유럽 흑사병의 폐허에서 막 벗어난 유럽인들에게 후추라는 식재료는 당시 집 한 채 값을 교환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이에 대한 탐닉으로 이어지는 무역 항로 개척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에 자신들의 군대를 들여오게 만들었다. 카나리아 군도의 원주민 구안체 족의 말살에서 시작되어 포르투갈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의 원정(1460~1524), 산타마리아 호를 이끌고 서인도 제도를 경제적 수탈의 거점으로 삼은 콜럼부스(1450~1506)에 이어 본격적으로 식민지 건설을 위해 대륙 침략을 자행하기 시작한 유럽 국가들은 대항해 시대 경쟁의 서막을 올리게 되었다. 멕시코 정복에 대한 공로로 본국으로부터 문장을 하사 받고 아즈텍 제국을 궤멸시킨 에르난 코르테스(1485~1587),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1471~1541)는 이러한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유럽의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것은 총과 칼 뿐만이 아니었다. 천연두라는 질병이 대양을 건너온 것이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는 천연두에 대한 내성이 있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이 병원체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무기 한 번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수 많은 원주민들은 죽음으로 내몰렸는데, 유럽인들로 부터 유입된 병원체들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홍역, 황열병, 뎅기열, 디프테리아 등이 뒤를 이었으며, 더욱 체계화된 수법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위한 식민 제국주의를 건설하고 있었으며, 노예 삼각 무역으로 악명을 떨치던 1800년대 까지 인간 노예들은 유럽,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를 이동하며 팔려나가야 했던 역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 유럽의 백인,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서로의 질병을 주고 받아야 했고, 이에 대한 면역력을 기르기 까지는 너무도 힘든 대가를 치루어야 했지만, 과학 기술의 발달로 숙주와 병원균은 전세계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고, 그 속도는 점점 가속화 되어 가고 있었다.
뒤이어,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의 오만은 또 한가지 전세계적 창궐을 허용한 병원체를 낳았는데, 그것이 바로 콜레라이다. 19세기 초, 이미 산업 혁명으로 근대화를 이룬 영국은 말이나 사람의 힘을 이용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기계 공업이 낳은 교통 수단을 만들어 놓고 있었는데, 증기기관의 발명은 세계 최초로 철도와 증기 기관차, 증기선의 등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산업화의 바람은 서방의 모든 국가로 번져 나갔고, 미국의 뉴욕, 프랑스의 파리, 독일의 베를린 등 대도시에서는 주택 공급량이 도시와 인구의 팽창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사람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언제나 배설물과 쓰레기가 넘쳐 나는 주거 상황을 맞딱뜨리고 있었고, 수도 시설의 비위생적 환경이 원인이 되어 중세 유럽의 흑사병 공포가 재현된 것처럼 새로운 병원체가 등장하였으니, 콜레라가 그 주역이었다. 콜레라는 사실 인도 벵골만 지역에 있었던 지역 풍토병이었지만, 영국의 인도 대륙 침탈 서막을 알렸던 플라시 전투 승전 이후, 급속화 되기 시작한 세계화로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는 이제 전세계적 팬데믹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당시 이미 아시아를 휩쓸고 지나간 콜레라는 중동을 거쳐 러시아에서 폴란드로 영국으로, 심지어 대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번지게 되었는데, 이는 산업화의 확장으로 발달된 교통 수단의 특혜를 병원체들 까지 얻게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20세기 들어서 인류 최초의 대량 살육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제 1차 세계 대전은 H1N1이라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전세계로 퍼뜨리는 결과를 낳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한 스페인 독감은 최대 추산 5천 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역사로 기록된다. 유럽 전장에서 쥐들의 공격과 참호족으로 감내해야 했던 비위생적 전선의 환경은 이 바이러스의 대규모 증식과 변이를 허용하여야 했을 것이고, 공중을 지배하기 시작한 항공 교통의 발달은 이 병원체들을 더욱 빨리 전세계로 퍼뜨렸을 것이다.
# 참고 문헌
- Arno Karlen, 「전염병의 문화사」, 사이언스북스, 2001년
- David Quammen,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 2020년
이러한 전쟁과 패권을 위한 투쟁, 승리의 인류 역사는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이면의 역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패권 다툼을 위한 전장은 언제나 자연 대지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기에, 인류는 인수공통감염병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었으며, 2차 세계 대전 이후, 지구라는 대지에서 자원을 대규모로 수탈하기 위한 조직적 경제 및 국가 사업으로 바통을 이어받은 지금의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 속에서 이윤 추구의 극대화를 그 무엇보다 우선 순위로 둘 수 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 보호는 두 번째 문제인 것이다. 러-우크라 전쟁(2020~현재)으로 뒷전으로 밀려버린 탄소중립정책의 현 주소가 이를 잘 보여 주고 있으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호모 사피엔스의 대규모 야생 침범은 이제 거의 극에 달해 있음을 매년 반복되는 기후 위기가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야생 침범으로 인류가 얻은 것은 경제적 이윤 말고도 새로운 적응 진화를 강요받은 병원체 - 바이러스도 포함된다. 그 병원체들은 원래 인간에 서식하고 있던 존재가 아니었으나 이제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서 서식이 가능한 형태로 변이된 존재들이 되었으며, 우리가 목격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의 증가는 인간의 역사가 낳은 부메랑이 아닐까 한다.
전염병의 등장과 평행선을 그어 온 인류의 발자취는 현 팬데믹 상황에 생태 평형의 과제를 낳았으며, 자원과 에너지 전쟁에 돌입한 전세계가 이제 눈을 돌려야 할 것은 지금 인류는 생태 불균형 지점에서 좌초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면 그 나무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에 기생하던 수많은 기생체들의 터전 역시 없어지게 됨을 인지하여야 할 것이고, 그 기생체들은 너무나도 빠른 변이 속도를 가지고 우리 몸 내부를 향해 돌진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참고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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