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관 2023. 6. 11. 19:40

# 주제, " 아름다운 전능과 파괴의 결집체, Belle Faust. 순환을 위한 해체 "

 

# 설명

 주제문에서 결집체라는 것은, 상반된 딜레마를 동시에 안고 있는 혹은 안을 수 밖에 없게 된, 인류가 이룩하여 온 결집체, 무지 혹은 이기로 이룩되어진 시스템을 비유한다. 그것을 본 프로젝트에서는 Belle Faust라는 두 개의 정이십면체 구조물을 통해 제시하고 있으며, 그것은 초고밀도의 환경으로서 '해체'라는 도마 위에 올려 놓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 딜레마라는 것은 지구에 생명이 태어나고 부터 생겨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굴레였을 수도 있고,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가 사냥을 해야 한다라는 것은 우리에겐 숙명이었을 수도 있다. 고대에서 현대 사회에 이르기 까지 인류 역사의 중심을 기술하였던 강대국의 역사는 찬란한 문화적 융성과 군사적 패권을 동시에 추구함으로써 동시대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노력들의 연속이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류에게 있어서 평화의 시대란 헤게모니 장악이 안정화되었을 때 항상 존재하였었다. 로마 제국이 남긴 문화적 유산은 끊임없는 정복 전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일이었음은 이미 역사가들의 정설이다. 

 '살아남기 위해선 스스로가 사냥을 해야 한다'라는 숙명과 생태 조건 속에서, 우리가 균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생태 환경의 진화 혹은 변화가 거듭되며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생태 균형점을 향해 가는 일종의 '운동'이라는 것이 어디선가 항상 발생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본 프로젝트는 현재 우리 인류는 그러한 정화를 위한 '운동'을 잃어버렸고 심각한 생태 불균형 지점에서 좌초하고 있음을 직시한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가 역사를 적어 내린 강대국의 헤게모니 쟁탈전과 같은 초고밀도의 결집 상태를 해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생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여정을 제안한다.

 

 이러한 주제 의식 속에서 본 프로젝트가 직시하는 비판의 지점들을 찾아보았다. 

 

1. (가벼운 일상 생활) '저녁 식사를 위한 돼지 고기는 바로 집 앞 대형 마트에 대부분 진열되어 있다. 구매를 통해 쉽게 식사 거리를 얻을 수 있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는 이것이 거의 지켜지고 있다.)

(=> 우리는 편리하게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식문화를 유지할 수 있는 상업 시스템(아름다운 전능)을 만들어 놓았으나, 자본 시장의 흐름 속에서 그 욕구의 과도한 탐욕은 자연 생태계를 침범하고 통제(파괴)해야 하는 현재에 이르렀다. 이것은 생태 불균형 지점을 낳았다. 이러한 지점을 비판한다.)

: 우리는 대부분 이러한 사실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연쇄 지점들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배가 부르거나 오늘 저녁 메뉴를 닭고기로 바꾸겠다고 하여도 대형 마트의 주인은 언제나 일정 규모의 돼지 고기 신선육 재고량을 비축하여 두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손님을 받으며 장사를 할 수 있고, 장사를 하며 돈을 버는 것이 그 마트 주인이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생계 활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는 아무런 문제를 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돼지 고기 신선육은 몇일 마다 한 번씩은 마트로 주문 배달이 될 것이고, 누군가는 돼지를 도살해야 하는 일이 생겨나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도살장이나 도축 산업의 시설물도 우리 식탁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게걸스러운 육식 문화를 해결하기엔 자연 상태에서의 돼지 개체 수는 너무나도 적다. 그래서 인류는 공장식 도축 산업을 만들어 왔고, 여기에서 돼지들은 비좁은 칸막이 안에서 대량으로 태어나고 길러지며 도살되어 진다. 너무 비좁아 종종 전염병이 돌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매번 살처분 되는 돼지들의 수는 경우에 따라 3만 ~ 5만 마리에 이른다. 대개는 포크레인으로 땅에 찍어 눌러서 생을 마감하도록 한다. 살처분 되어진 만큼 그들의 개체 수는 강제적으로 메꾸어져야 한다. 이러한 방식이 어떻게 유지되는가. 도축 산업 현장의 업주 역시 대형 마트의 주인 처럼 효율적으로 일정 수의 돼지를 도살하고 길러내는 것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즉, 도축 산업 현장의 업주에겐 그것이 생계 활동인 것이고,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자신의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 그 업주에겐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연쇄 과정은 마치 아날로그 시계 속의 기어처럼 정밀하게 맞물려 있어서 상황에 따라 돼지가 얼마나 도살되어야 하는지 쉽게 계산되어 진다. 그렇다면, 돼지의 생애는 무엇에 의해 결정이 되는가. 바로 인류의 육식 문화 소비 트렌드에 달려 있게 된다. 그 소비 곡선에 따라 돼지들의 공급 여부가 결정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류와 가축으로서의 돼지 사이의 관계는 이러한 식으로 놓여 있었고, 그 관계는 꽤 오랜 시간 지속되어 왔다. 돼지들은 스스로 개체 수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고, 스스로의 먹이 활동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가축화'되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만들어 낸 식량 공급 능력은 자본이 거래 되는 과정 속에서 그 생산 규모를 통제하게 되었다. 이것이 인류의 저녁 거리를 항상 정상으로 유지시켜 주기 위한 사회 시스템이고 우리는 이기와 무지로 이를 받아들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가 돼지 뿐만은 아닐 것이다. 식문화와 연관된 상업 시스템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으나, 위와 같은 사회 시스템을 본 프로젝트는 지적한다.

 

2. (국내 정치) 10.29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55일간의 기록 

( => 자기 합리화에 몰두된 두 국내 거대 집단의 정쟁, 두 거대 집단은 스스로의 정치 이념을 위해 뭉쳐있고, 그 신념은 대한민국을 이끌기 위해 완전하다라고 믿고 정치 활동을 완성하려고 하는데, 그것에 상대하려는 다른 편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 (참고 기사 : https://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1076594.html )

 정치적 기득권 유지를 위한 각종 부조리로 얼룩진 대한 민국 사회의 민낯은 10.29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에서도 드러났다. 유가족 당사자들의 울분은 정쟁 사투의 한복판 속에서 완전히 묻혀있었고, 당시 국정조사 55일 간의 기록은 당사자를 사이에 둔 정치적 이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정치적 힘겨루기에 다름이 아니었다. 위의 참고 기사에서 잘 보여주듯, 최종적으로 결과보고서는 여당의 반대로 채택되어지지 못한 채 마무리가 되어버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했었다. 처음 부터 끝까지 당시 유가족들의 바램은 단 하나였다. 정치적 목적으로 서로의 흠만 잡을 생각을 중단하고 유가족들의 입장을 생각해 달라는 것이었으나, 결국엔 아무 성과 없이 무산되어 버린 국정 조사 기록이었다. 

 투쟁에서 승리를 쟁취하려면 양쪽은 모두 강하게 하나가 되어 뭉쳐야 한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의 현장 역시 그러하였다. 서로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여권과 야권 양쪽은 한 치의 틈이나 오류도 없는 결집체였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위해 그러한 결집 상태에 이르렀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고, 참사를 수단으로 삼아 양쪽 각자가 자신만의 '이기'에 집착한 결과는 아니었는지, 그 사이에서 아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참사 유가족 당사자들은 기댈 곳이 전혀 없었던 그 순간들을 어떻게 버텨내야 했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당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록은 본 프로젝트가 지적하는 초고밀도 결집체의 단면을 잘 보여 준다. 

 

3. (국제 사회) 신냉전 구도, 패권 경쟁 (자기 합리화에 몰두된 세계 패권국들간의 정치 외교 전쟁)

(=> 자기 합리화에 몰두된 세계 거대 집단의 패권 경쟁, 두 거대 집단은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이념을 위해 뭉쳐있고, 그것에 대항하려는 다른 편을 제거하려고 노력한다.)

: 1990년에 들어서면서 인류 역사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건이라고 한다면, 공산주의 이념의 지주적 역할을 하고 있었던 소련의 붕괴였을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20세기 초 러시아의 마지막 제정 통치의 상황을 상기한다면, 공산주의 이념의 급격한 도입은 폭력이 동원되어도 허락이 되는, 당시 자본주의와 지주 세력에 대항하는 민중들의 뜻과 염원이 담긴 일이었을 것이다. 전쟁으로 얼룩진 20세기 초 중반의 역사는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초거대 결집체의 대결 구도로 이어져 언제 제 3차 대전이 터질지 모르는 불씨만을 남겨 놓은 채 핵무기 개발을 앞다투고 있었고 보안이라는 명목하에 사회 정책의 모든 부분에서 그 대결 구도는 서로의 총구를 항상 겨누고 있었다. 이제 전 인류는 소련의 붕괴를 목격하였으나, 이념적 대립이 남겨 놓은 지점에는 신냉전 구도가 생겨나게 되었고 21세기의 대결 구도는 또 다른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중국의 위세에 많은 경제 석학들은 경제 패권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이냐를 두고 논쟁을 시작하였었는데, 지금은 패권 경쟁을 넘어 군사적 대립의 최전선까지 다다른 상황이다. '하나의 중국', '일대일로' 라는 기치를 내세워 막대한 자본력을 과시하면서 굴기를 꿈꾸는 한 쪽(중국)이 있다면, 천 조원이라는 국방 예산을 마다하지 않으며 나토 군사 협의체를 넘어서 아시아 주요국들과 함께 경제 군사 협의체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는 다른 한 쪽(미국)이 있어서, 서로의 총부리를 겨누는 현장은 한반도와 대만 앞바다에서 목격되고 있다. 또한, 2022년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터져버린 러-우크라 전쟁의 여파는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전세계는 거의 양분되다시피 하였다. 마치 구소련 시절처럼 아직도 이념 대립이 남아 있었나 싶을 정도인데, 나토와 러시아 사이에서 중립국을 유지하던 유럽의 완충지대는 이제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대결 구도는 동아시아 안보 상황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 때 이념 전쟁의 최전선이었던 한반도. '북-중-러'와 '한-미-일'이라는 대립 구도는 이 한반도에서 가장 최근 발생된 또 다른 이름의 대립이다. 

 국가의 탄생, 민족의식의 고취, 자주 국권 이념이 이룩한 인류 역사의 진보는 한 세기가 겨우 지나, 국가를 초월하는 군사적 경제적 결집체로 그 모습을 승계하였는데, 지금은 누가 패권을 쥐게 되느냐의 '이기'로 점철된 대립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 우리는 러-우크라 전쟁의 양상과 미-중 패권 경쟁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패권 경쟁 속에서 누가 소외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우리가 가꾸어야 할 지구의 자연 생태 환경이 소외되고 있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 협약으로 시작된 세계 각국의 탄소 중립 정책은 러-우크라 전쟁이 터지고 나서 거의 무색해 졌다. 러-우크라 전쟁은 러시아가 쥐고 있었던 에너지 패권의 또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는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경제 조치는 유럽에 안전하게 에너지를 공급해 주던 러시아를 별로 압박하지 못했고, 이제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친환경 정책을 고수하던 국가들은 에너지 수급이 막혀 화력 발전을 다시 가동시켰다. 지금 현재 인류는 아직도 기후 위기의 경고를 한 몸에 받고 있으나 인류가 해야 할 눈 앞의 일은, 핵무기를 대신할 재래식 무기를 대량 생산하고 전쟁에 필요한 화석 연료를 안전하게 갖추는 것, 우주 산업, 에너지 패권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아야 하고, 하루 빨리 경제 군사 동맹을 확장시키는 일이 되어버렸다. 기후 위기라는 인류 공동의 과제가 눈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해 관계 속에서 굳어진 이념적, 경제적, 군사적 결속력은 그 어느 때 보다 심각해져 있는 2023년 현재, 여전히 우리는 강한 결집체를 이루어 내야 생존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 있으며, 여기에 지구의 에너지 자원은 한 치의 양보가 없는 경쟁의 희생물이 되어 버렸고, 올해 초 보고된 강한 엘니뇨는 지금 2023년 여름을 향해 수온을 높이고 있다. 2019년 전 지구를 강타한 COVID19 팬데믹, 그 때 정지된 공장 굴뚝 사이로 드러났던 인도 뉴델리의 화창한 하늘은 아마도 기억 속에만 남게 되지 않을까 한다.

 패권 경쟁을 위한 위와 같은 대립의 역사와 현주소는 본 프로젝트가 강하게 지적하는 인류 사회의 모습이다.

 

 


 

 

# 보충 설명

 

(3번의 예시를 통해 주제문을 어구로 나누어 말씀드립니다)

 

- 아름다운 전능 :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지도자이다. 그의 국민들은 다른 국민들 보다 모든 방면에서 안전하고 발전된 삶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그것을 실행하여 오고 있다. 이 과정을 그는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다른 국가들에게도 이 아름다운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한 명 더 있다. 그 둘은 서로 다른 이념을 수호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스스로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자신이 통치하는 국가는 인류가 이루어 낸 대부분의 분야에서 그 어느 국가들 보다 앞서 나가있다고 생각한다.

 

- 파괴 :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그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20세기 내내 노력한 결과, 그가 지휘하는 군함들은 아-태 지역에서 최고의 위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가 만든 폭탄은 바다 위의 섬 하나를 지울 만큼 강력했는데, 이 모든 성과들은 모두 자기 자신의 의지를 수호하기 위한 일이었다. 다른 지도자 역시 비슷한 일을 지난 수 십년 동안 벌여왔다.

 

=>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그들의 역사는 아름다운 전능을 위해 파괴를 동시에 만들어 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 결집체 :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혼자가 아니었다. 자기가 도움을 준(원조) 친구들을 포함해 새로운 친구들에게 협력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우리에겐 공동의 적이 있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공동체를 만들고, 결집의 규모를 더욱 키우는 것이 그들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 Belle Faust : 본 프로젝트는 구조물을 제시하는데, 위에서 말한 결집체를 상징한다.

 

- 순환을 위한 해체 : 나는 그들이 만든 결집체의 어느 한 부분에 속해 있다.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나, 그들은 분명 해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 때문에 숨통이 멎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